[IT 벤처에서의 소고] 시스템과 복지

우리는 시스템이라 불리는 매우 고도화 된 관리체계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특히, 선진국일수록 대기업일수록 복잡하고 세세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초중고, 4년제 대학, 대기업을 거치기까지 의심없이 받아들였던 시스템의 본질을
벤처를 경험하며 하나씩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여기에 내 생각들을 적는다.
100세 시대를 목전에 두고, 누군가의 고용인으로 50을 넘기기 힘든 지금 시대에

후일 내 시스템을 갖추기 위하여 모두가 함께 행복한 울타리를 만들기 위하여


최근 페이스 북 링크에서 이글을 읽고 이 생각을 글로 정리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대선을 앞두고 요즘의 화두 중 하나는 무상급식, 무상교육, 반값 등록금, 복지 포퓰리즘 등으로 거론되는 복지의 문제이다. 뭐 그렇다고 정치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고, 북유럽은 많은 세금을 내고 많은 혜택을 받으면서도 그 나라 국민들은 모든 것을 당연하게 느끼는 반면, 우리나라는 덜 내고 싶어하고 더 받아가고 싶어하고 엉망진창이다. 그런데, 이는 회사에서도 똑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좋은 회사가 되기 위한 시스템과 복지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한다.


지금의 회사(뉴인)는 매우 인간적이고 가족적인 분위기의 회사이다. 오래 전부터 알아왔던 인맥 네트워크 중 서로가 서로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인정하는 사람들끼리 뭉쳤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구인 공고 때 나오는 가족적인 회사와는 완전히 다른 의미의 가족적인 회사이다. 그러나 요즘에 들어 이러한 분위기가 중장기적인 조직 확장에 좋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내부적으로 인력 수준에 대한 기준치가 까다롭기 때문에 조직 확장을 쉽게 하진 않겠지만, 영원히 작은 벤처로만 살아갈 수는 없으니까...


먼저, 나는 삼성전자에서 뉴인으로 왔다. 삼성전자는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고 더 많은 조직으로 이루어져 있다. 때문에, 인터넷에서 읽는 내용들을 매우 파편화 된 일부의 이야기이며, 삼성전자 내부에도 우리 사회처럼 굉장히 다양한 형태와 문화의 작은 조직들이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삼성전자의 연구원은 자율출퇴근제를 한다. 자율 출퇴근제란 아침 6시부터 오후 1시 사이에 자유로운 출근을 허용하며, 하루 9시간 근무를 채우면 지각 등의 처리가 되지 않는 제도를 말한다. 물론, 모두가 자유롭게 이 제도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양산라인과 긴밀한 관계가 있거나 타부서와의 협력이 절대적이라면 좀 더 딱딱한 근퇴를 적용 받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긴급시에는 누구나 위의 룰에 근거해서 연차를 사용하거나 징계를 받는 등의 부담 없이 근퇴를 조정할 수 있다.


뉴인에서는 9시 출근 6시 퇴근이 기본 근퇴 정책이다. 하지만, 보통은 10시까지 출근해도 상관 없고 개인적인 사정에 의해 좀 늦거나 일찍 가는 것에 대해 문제 삼지 않는다. 나는 올해 들어 여러가지 이유로 몸이 자주 많이 아파서 어떤 달에는 입원 등으로 한달 중 2주간 출근을 못하기도 했다. 하지만, 감봉이나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룬 적은 없다. 일반적인 기업들에 비해서 매우 좋아보인다. 단, 이러한 근퇴의 룰은 명문화 된 것이 아니다. 가족적이기 때문에 문제삼거나 싫은 소리를 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회사에서 삼성전자에 비해 매우 낮은 연봉을 받는다. 물론, 내 회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커리어가 나보다 낮으면서 더 받는 사람도 있다. 창립멤버로 어려운 회사를 위해 많이 고생했기 때문이다. 어짜피 아직 성장단계라 그 봉급이 그 봉급이기 때문에 더 많네 적네 하는게 우스운 금액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당연하다고 생각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의 학력과 커리어가 무시당하는 느낌을 지우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난 학자금도 갚아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금전적인 압박이 심하다.

회사의 구성원 대부분은 능력이 자신의 커리어 수준을 뛰어넘는 사람들이다. 우리회사의 3년차 디자이너라면 업계의 3년차 디자이너의 능력을 상회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1당 100의 능력자들이라고 할지라도 분명 뽑을 수 있는 맨먼스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여러 개의 업무를 맡고 있다면 분명 소홀함이 생기기 마련이다. 삼성전자였다면 책임소재를 가지고 임원을 이메일의 참조로 포함하여 스케쥴 및 책임에 대한 많은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담당자를 엄청나게 압박 했겠지만, 우리회사는 이해하고 넘어가며 여유를 주려고 한다.


위의 내용들을 보면 매우 좋은 회사라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위의 상황에는 매우 위험한 맹점이 도사리고 있다. 바로 배려에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즉, 귀에 걸면 귀걸리 코에 걸면 코걸이, 문제 삼고 싶으면 언제든지 공격당해도 무방한 배려들인 것이다.


나는 회사에서 많은 배려를 받아왔다. 하지만, 그것이 행복으로 연결되지 않는 다는 것을 최근 깨닳았다. 바로 과도한 배려는 마음의 부담이 되는 까닭이다. 한편에서는 사정을 봐주고 도와주려 하는 것에 고마움을 느끼지만, 이와 함께 구성원에게 미안함과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또한, 삼성전자에서는 당당하게 내 봉급으로 처리할 수도 있고 시스템에서 보장하는 당연한 권리들이었는데, 지금은 그런 것들에 대해 배려라고 받아들여야 하고 고맙고 미안해 해야하는 것에 대한 복잡한 심정이 들기도 한다.


바로 이것이 시스템과 복지의 문제에 대한 고민으로 연결 되었다. 


시스템이라는 것은 일종의 습관과 같다. 사람이 더 나은 생활을 위해 좋은 습관을 들여야 하듯이 회사는 더 나은 시스템을 구축하고 구성원이 그것을 따르게 해야한다. 복지는 회사가 구성원에게 내리는 은혜가 아니라 구성원이 생활의 불안정 없이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안정장치이다. 가족같은 회사에서는 일반적인 시스템과 복지를 뛰어넘는 배려와 지원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고마움과 함께 죄책감이나 불합리한 의심, 억울함 등 많은 감정을 양산한다. 사람이 지나치게 많은 감정을 품게되면 곧 스트레스로 연결된다.


만약, 시스템이 많은 것들을 기본적으로 보장한다면, 구성원은 아무런 생각이나 감정 없이 당연하게 주어진 시스템을 이용하면 된다. 그것이 그들의 스트레스를 줄이고 생활을 안정 시킨다. 만약, 시스템을 넘어서는 배려가 필요하고 회사가 그것을 해주었다면, 구성원은 그 배려에서 복지 정책의 보장을 뺀 딱 그만큼만 마음의 부담을 갖으면 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그 정도는 고마움 이외에 죄책감이나 미안함까지 갖을 정도로 큰 배려는 아니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그 고마움을 업무로 보답할 것이다.


위의 생각에 비추어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 2009~2010년 쯤 수원의 디지털 시티에서는 연구단지 내에 베스킨라빈스나 도미노 피자, BBQ 치킨등 다양한 프렌차이즈를 입점시키는 중이었다. 삼성전자의 보안정책을 생각하면 상당히 파격적인 복지였다. 

그런데 입점 후 무선사업부에 이메일이 하나 돌았다. 내용인 즉슨 이러하다. 당시 몇년간의 암 투병 끝에 별세한 과장급 내지는 부장급 연구원이 있었다. 가장을 잃은 가족은 삶이 막막했다. 그 때, 사측에서 입점되는 점포 중 도미노 피자의 주인으로 들어올 것을 고인의 부인께 권유했다. 자영업을 위한 각종 교육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고 점포에 대한 모든 것을 회사가 일괄 처리했기 때문에 그 부인은 몸만 들어가서 운영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 부인께서 무선사업부 전 직원에게 남편을 떠나보낸 후 불안과 슬픔, 사측의 뜻밖의 배려에 삶의 희망을 찾고 자식들을 당당히 키울 수 있게 된데 대한 감사, 앞으로 매장 임직원들을 정성으로 모시겠다는 다짐을 담아 전체 메일로 발송한 것이다.

단지내 입점 점포는 시중보다 판매 가격이 저렴하다. 대신 가맹비나 인테리어 등을 회사에서 처리하고 단지내 3만에 가까운 임직원에 대해 독점적이므로 어마어마한 이익이 남을 것이다. 이 이권을 회사를 위해 일하다 별세한 임직원의 가족을 위해 배려했다는 것이 충격이자 화제였다. 물론, 매장 운영권은 2년 한시적이며 그 이후에 다른 임직원의 가족에게 운영원을 넘겨야 하지만, 주먹구구로 해도 시중 매장 2년간의 수익에는 비교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종자돈을 만들어 세상에 나갈 수 있다는 계산이다.

삼성전자에는 어마어마한 복지들이 있고 모두들 그것들을 당연하게 사용하고 있다. 다만, 그 당연함을 넘어 내 가족들을 위해 회사가 위와 같은 배려를 해줄 수 있다는 사실에 아마 애사심이 당시에 많이 상승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즉, 시스템은 구성원이 부정적인 마음의 부담을 갖지 않게 하고 불합리함을 제거하여 불만을 갖지 않게 하는 초석이 되며, 이는 스트레스를 줄이고 환경을 안정시킨다.


정확한 워딩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구글의 일하는 원칙 중 원칙 중 대충 이런 내용이 있었다고 한다. "시스템화 할 수 없는 경험은 필요가 없다." 공학자 중심의 회사에 실험과 검증을 논문화 하는 것이 습관에 밴 사람들이기 때문에 갖는 마인드라고 생각하지만, 일반화 시켜도 주옥 같은 말이기도 한다.